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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우문우답(愚問愚答)

염세 2019. 5. 28. 03:08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한 적이 있나요?

  어쩌면 황당한 질문이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지금 이 순간 경험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이는 지금 제가 썼던 베개를 베고 저와 함께 덮던 이불을 덮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잠들기가 두렵다는 말을 내뱉던 게 기억이 납니다. 가끔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들 우리는 아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끔 저는 그가 꿈꾸는 세상만이 아름답고 제가 꿈꾸는 것은 그러한 세상을 파괴하는 것뿐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절대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질적인 존재인 것은, 너무 당연해서 부정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나도 달라서 타협할 여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이유겠지요. 저는 그가 저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에게 유의미한 것과 제게 유의미한 것이 달라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저와는 다르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배우는 일 자체에 흥미를 느낍니다. 또한 그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모든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는 인간 전체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사람들과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는 의식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까 봐 불안해합니다. 저는 그보다는 좀 더 자폐적입니다. 저는 한 가지 생각에만 꽂혀 있고, 몇 년 동안,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해왔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하고, 제게 있어 타인은 제 생각을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저는 사람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제게는 어떤 인간적인 교류도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의 인생을 비몽사몽한 채로 살아왔기에 저는 잠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깨어있어야만 하는 시간들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잠(망각)은 달콤하고 일상(기억)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기적과도 같은 우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질적인 존재임과 별개로 우리는 서로에게 모종의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실은 저는 그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요. 저는 문득 그가 그리워졌습니다. 저와 같은 공간에서 잠든 그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는 지금 저와는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잠든 그는 저라는 자극으로부터 차단된 지 오래입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그를 깨워서 그의 주의를 끌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입니다. 그가 늘 했던 것처럼 그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그것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러나 그가 잠들기 위해 애써왔던 것을 알기에 저는 애써 그 충동을 억누릅니다. 제가 편안해하는 곳에서 그가 잠시나마 평온을 얻을 수 있다면 저도 그 이상으로 바랄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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