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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어느 날의 일기

염세 2019. 10. 11. 12:23

  여느날과는 다르게 상쾌한 아침이다. 아마 어제 푹 잘 수 있어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 술에 취한 채로 잠들면 피곤하다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아주 지쳐버리지 않는 한 잠이 오지 않았다. 사실 난 잠에 들기가 두렵다. R만큼은 아닐지라도.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내 존재의 유한함을 상기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종종 있었다. 때문에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어제 맵거나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는 바람에 속이 더부룩했다. 토하고 싶지 않아서 복약 시간을 뒤로 미뤘다. 학교에 가기 전에 간편죽이라도 먹고 가려 했건만. 씻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늦게 일어난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은 중한 번역 강의를 듣는다. 기껏 열심히 준비해간 번역 과제였지만 사실은 볼품 없는 결과물이었음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애쓴들 한국인만큼 한국어를 잘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지? 무얼 위해 나는...
  10여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부터 나는 한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열 한 살 때 나는 집에 오자마자 책을 소리내서 읽으며 발음 연습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독해력과 작문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복습을 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서 10대 중후반이 되어도 한국인이 아니라는 게 티가 나지 않지만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교지 편집부에 들어가서 편집 부원으로 활동하고, 성소수자 인권 모임 따위에 들어가서 자보를 써붙이는 동안 정말 놀라운 속도로 한국어가 늘었다. 아무도 내가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심을 거둘 때쯤, 나는 내가 중국어를 거의 다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외할머니가 부산에 놀러왔을 때 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대학 생활에 대해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고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을 말들인데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잘 지낸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 진실은커녕 거짓말조차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정말 이대로 중국어를 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정말 돌아갈 만 한 곳이 영영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평생 어색한 한국어를 쓰는 불완전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야 할텐데. 도무지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이미 나는 너무나 애매한 존재가 되어버려서 한국인과도 한국에 있는 중국인과도 섞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가끔 인천에 살던 때가 그립다. 그때만큼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나는 중국 식당에서 일했었다. 고급 중국 식당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아저씨들이 회식하러 오는 술집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6일을 일했고, 하루 10시간 동안 그 곳에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 곳이 좋았다. 주방장부터 나와 같이 홀서빙을 하는 직원까지 모두가 중국인이거나 화교였다. 나는 특히 홀서빙 직원과 친하게 지냈다. 일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낸 것도 한 몫했다. 사실 별로 깊은 얘기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와 사장에 대해 뒷담화를 했고 손님이 너무 많다고 욕을 하며 남은 음식과 술을 주워 먹었다. 아주 가끔 그는 그의 고향에 대해 얘기했다. 그가 살던 동네와 그 곳에 남겨진 가족들에 관한 얘기를.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얘기였다. 그 곳에 있는 누구도 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고, 나조차도 내가 그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했다. 내가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보다 월 20만원을 더 받으면서도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보건증을 떼면서 내 국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떻게 네가 한국 국적일 수 있냐며 놀라움을 가득 띠며 물어오던 그 얼굴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뒤로도 친하게 지냈지만 왠지 전처럼은 되지 않았다. 그는 나와 멀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거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속인 느낌이다. 나는 모두를 속인 것 같았다. 나는 한국인들 앞에서는 한국인인 척을 하고 중국인들 앞에서는 중국인인 척을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부끄럽다.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지 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의 존재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규정하는 것일 뿐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는 돌아가고 말 것이라는 의지를 다잡은 날들을 뒤로 하고 현실에 순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는 중국어를 하지 않았다. H대 근처의 세계과자점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중국인, 대만인, 홍콩인들을 만났지만 내가 중국어를 다시 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나는 입만 열면 사람을 속인다. 설령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된다. 사람들이 파악할 수 있는 진실 속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관두기로 했다. 중국 음식점에서 조선족 점원에게 중국어로 말을 거는 것도, 그렇게 해서 호감을 사거나 호의를 받는 것도 다 그만두기로 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한국인들 앞에서 묘기를 부리는 원숭이 노릇을 하며 나를 자신들과 같다고 여기는 중국인들을 기만할 수는 없었다. 며칠 전에는 중국의 최신 유행 가요만 뽑아놓은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를 들었다. 2010년대말의 중국에서는 느린 박자의 애절한 발라드가 유행이다. 나는 그 노래들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평범한, 그리고 평범하기에 가치 있는 존재일 수 있었을지를 생각했다. 만약 내가 2008년의 초여름에 한국행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더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계속 그 곳에 머무른 채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면. 내가 누릴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니 서러움에 눈물이 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괴물이 된 채로 매일 내가 괴물임을 상기한다.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그리워하는 2000년도의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2019년의 중국으로는 갈 수 없다. 나와 그곳 사이에는 10년 여의 시차가 가로막고 있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인 양 굴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가도 나는 중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 중 한 명으로 남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일만 남아있다. 나는 이 모든 걸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게 프릭쇼로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입을 다문다. 그것이 내게 남은 일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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