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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0년 10월 31일

염세 2020. 10. 31. 20:45

 

 

10월 31일

 

 

  중간고사 대체 과제를 하기 위한 자료조사를 핑계로 학교 도서관에 다녀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왜 진작 책을 반납하지 않았냐는 사서의 핀찬을 들으며 내게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의 연체료를 냈다. 전염병의 유행으로 몇 달 간 문을 닫았던 도서관은 내 기억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출 예약이 꽉 차있어서 빌릴 엄두도 못냈던 책을 빌려 볼 수 있었다는 것뿐이다. 추리고 또 추려서 열 권 정도의 책을 빌렸지만 그 중 과제를 위해 빌린 책은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다. 전처럼 아무 계획 없이 그저 돌아다니며 읽고 싶은 책을 집어온 게 아닌데도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도무지 줄어들지를 않았다.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다룬 책들과 정동 이론 가이드북과 사라 아메드의 저서들… 정동 이론 가이드북의 서문을 정신없이 읽어나가다가 R에게서 온 연락을 받고나서야 내가 집에 돌아가야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하루종일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더라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다. 문득 내가 존경하고 따르곤 했던 K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K교수는 연구자들이 학문적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한국 연구자들의 나태함을 비판하곤 했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과 관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와 같은 인간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 내내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만 하는 사람은 될 수는 없다. 공부에 대한 열정과 흥미가 부족해서, 혹은 나의 집중력이 오래 지속되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이틀은 10시간 동안, 혹은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증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생긴 채무를 탕감할 수가 없고, 매달 월세로 빠져나갈 돈을 마련할 수 없다. 그리고 휴일 중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부업을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주당 5만원의 수익을 생활비에 보태 쓸 수 있다. 가끔 나는 본인이 매우 태만하며, 따라서 연구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일주일 중 단 하루도 나는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을 하며 지낼 수 없다. 다른 남자 연구자들과 달리 나는 아내라는 하인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요리와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것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내가 알바와 부업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위해 돈을 벌어다주지 않는다. 나를 책임지는 것은 오로지 내 자신뿐이며, 내가 책임지고 있는 존재가 오로지 나뿐인 것도 아니다. 물론 정 급할 때는 파트너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다. 도움받는 횟수가 누적되다 보면 관계의 균형은 기울어지고 더 이상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여자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은 식탁에 엎질러진 주스나 저절로 깨끗해질 리 없는 빨랫감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불운하게도 아이가 있는 경우라면 빽빽거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미소짓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하루종일 공과금과 수도세, 당장 내일 먹기 위해 준비해야 할 식재료, 마르지 않는 빨래와 밀린 월세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진지하고 철학적인 고민을 할 만 한 시간은 고작 몇 분 남짓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여자 연구자들은, 아니 연구자들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자들은 너무 쉽게 포기한다. 여자들은 아버지나 남편의 압박 때문에 학업도 경력도 그 어떤 것도 포기할 만 한 준비가 되어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굴욕적이다.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것은 여성이 금수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현실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하인이고 노예이며 사회적으로 내가 지니는 가치는 성적인 재화, 혹은 아기 공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없고, 불가피하게 임신을 하게 된다면 단식을 하거나 계단에서 굴러서라도 인공유산을 시킬 자신이 있지만 아주 단순한 집안일을 아주 잠깐만 하고 있어도 나는 노예로서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심지어 나는 이걸 다른 이에게 떠넘길 수도 없는데, 첫번째로는 내 가족이 내게 도움을 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내 파트너도 여성(엄밀히 말해서 여성은 아니지만 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노예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내 파트너가 노예 노동을 하게 된다. 노예 노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내가 피해가고 싶은 만큼 내 파트너에게도 전가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R은 왜 이토록 가사 노동을 증오하냐고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순간 나는 코웃음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기에 겨우 참고 넘겼다. 기분 내키는 대로 반응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리라고 보기는 어려웠을 뿐더러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한들 우리는 (포스트) 봉건 노예로서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아서 두 사람 몫의 노예 노동을 하는 대신 서로의 노예 노동을 분담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세계 곳곳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고 있는데… 정말 성차별주의도 다 과거의 유산에 지나지 않는 거다. 물론 유복한 게이 커플은 대리모를 써서라도 여성의 성을 착취하고, 가난한 레즈비언, 혹은 유색인 여성들은 푼돈을 받고 대리모에 지원하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무슨 이유로 남성을 선망하는지 내게 묻는다. 그러나 나는 그 질문 또한 왜 가사노동을 등한시 하냐는 말만큼이나 우습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사노동을 등한시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가사노동이 등한시되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은 여자들에 의해 무급으로 이루어지며 마땅한 인정과 분배를 받지 못한다. 대체 어떠한 형태로든 보상받을 수 없는 노동이 노예노동이 아니고서 무엇일 수 있냐는 말인가. 마찬가지로 남성을 왜 선망하는지도 무의미한 질문이다. 모든 여성들은 남성의 지위와 남성성이 가지는 정상성의 위상을 부러워한다. 그만큼 남성의 지위와 남성성의 위상은 선망할 만 한 것이다. 일단 남성들의 세계에는 자질구레한 방해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그로 인한 위험에도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아동기에 그들은 마땅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불의의 사고로 인해 그것을 박탈당할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청년기는 그들의 가능성이 꽃피는 시기로 그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에 다 도전해볼 수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꽁꽁 싸맬 필요도 없고, 이성을 유혹할 때를 제외하면 자신이 이성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쟁취해낼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남성 동료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일을 마친 후 집에 오면 그는 잘 정돈된 집안에서 따뜻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식사를 하고난 후의 잔해를 치울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는 자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한 남성들의 무대다. 무대를 세우고 무대 뒤를 정리하고 필요한 소품을 만들어서 건네주는 것까지 전부 여성의 몫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남성을 선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성적으로 공격하려 들지 않는, 자신이 원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반대 성의 노예나 하인에게 맡길 수 있는 세계를 누가 마다하리라. 남성들이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것은 허위의식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가부장제로 인해 피폐해진 남자들의 인간성을 걱정해줄 이유는 없다. 인간성조차 남성 중심적으로 정의되었으니 그런 문제는 남자들끼리 해결하게 두자. 남자들에게 여자를 부리는 것은 마치 마부가 말을 부리는 것과도 같다. 그들의 인간성은 오직 다른 남자가 여자와 같은 취급을 받을 때에나 발휘될 것이다. 그러니 걱정일랑 접어두자. 이제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는 과거의 유물이고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재해석함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 매력적인 해방의 약속처럼 들리지만 지난 세기에 주어진 것에 비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남자는 자신을 대신해서 가사와 육아, 심지어는 공적인 업무까지 보조해줄 여자 노예가 있고, 여자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남자 주인의 일까지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제아무리 남자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노예라 하더라도 남자 주인만큼의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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