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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0년 10월 14일

염세 2020. 10. 15. 00:40

 

 

10월 14일

 

 

  네이버 블로그에서 주로 활동하게 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덜해졌다. 형식을 벗어난 글쓰기가 주는 해방감을 처음 맛보고 나니 나는 중독된 것처럼 그 느낌에 빠져들었다. 일기를 올리지 못한 두 달 동안 나는 오로지 나의 작업과 학업, 생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면서(여기까지는 지난 학기와 같다) 두 편의 에세이와 세 편의 영화 리뷰를 써서 올렸다. 재미없는 영화를 소재로 해서인지 아니면 내 글 쓰는 실력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상했던 것보다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기대치가 높지 않았기에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의 타격은 더욱 컸다.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근 일주일 간 좀 더 이목을 끌 만 한 글감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사람들이 좋아할 만 한 글 두세 편을 구상해낼 수 있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지는 못했다. 다음 주부터는 중간고사 기간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대면 시험이 있고, 그 다음 주까지는 내야 할 과제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모 단체의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전에 비해 개인 작업에 투자할 시간은 좀 더 줄어들게 되었다. 사실 단체 일을 하게 되면서 작업에 대해서는 거의 단념하게 되었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에 들어선 것도 있지만, 업무 내용을 숙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몇 번이고 자기 자신을 의심해야 했고, 이런 불확실성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활동 교육 시간에도 성실하게 참여했고, 교육 자료를 읽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계속 헤매야 했다. 나를 제외하고 단체의 모든 사람들이 친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아마 그 분들이 상근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나와 같은 연배인 신입 활동가는 활동하는 데 항상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돈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이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신입 활동가의 열정과 열의에 나는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활동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임은 단체 활동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일을 하고자 한 것은 활동 기간이 올해 시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이고, 업무 내용이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면서 나는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했고, 업무 내용을 숙지하기 위해서라도 가까이 해야 할 선임들을 어려워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미루고 미뤄오다가 결국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업무 내용을 숙지하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자책을 하거나 자괴감을 느낄 틈도 없었다. 어쨌든 상황을 수습해야만 했고 나는 서둘러 신입 활동가에게 연락을 했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내줄 수 있냐는 말과 함께 나는 그에게 몇 번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다른 일정이 있는지 아직까지는 답신이 없었다. 비합리적이고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가 나를 한심하게 여길까, 나를 경멸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활동을 재개하면서 나는 불안감에 압도되어 그 뒤로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강의를 들어도 강의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밤에 R과 같이 산책로를 걸어도 예전처럼 산뜻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무거운 것이 가슴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고, 밤이면 밤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악몽을 꿨다. 나는 이 감정이 비합리적이고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안해할 시간에 선임들에게 질문을 하고, 죄책감을 가지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활동에 열심히 동참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일을 못한다고 해서, 업무 내용을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늦게 숙지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나는 불안하고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내가 있을 만 한 자리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큰 프로젝트의 총괄이 되어 성과를 내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아닌지는 불확실하지만 나는 일머리가 없는 편이고, 내가 일하는 실력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해도 다음 날에 출근할 수 있을 정도로만 일을 하려 했고, 그 이상은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포기가 빨랐던 나는 소질이 없는 일은 손에도 대지 않으려 했고 얼마 전에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나서도 그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가던 길만 가고 하던 일만 해오면서 나는 그 어떤 새로운 일도 감행할 용기가 없는 평범하고 무능한 사람이 되어있었다(처음부터 그랬는데 그 사실을 이제 와서 자각한 것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우울한 생각에 빠져들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아 R에게 세 정거장 거리의 공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을 제안했다. R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지갑과 보호구를 챙긴 다음 자전거를 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예상외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숨이 차서 길가에 자전거를 멈춰 세운 다음에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해야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어를 너무 바짝 올린 상태였다. 잠깐의 휴식 시간 동안 나는 R에게 엄마의 논문 심사와 모니터링 사업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토해내다시피 얘기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정말로 토한다한들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면서 R은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며 내가 업무 내용을 숙지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고 기어를 조정해서인지 다음 행선지까지 가는 것은 이전만큼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서 물을 사고 편의점 위층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R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를 집밖으로 끄집어냈건만 막상 나오고 나니 온몸의 진이 다 빠져서 생각보다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도 얻은 게 없진 않았는데, R의 몇 안 되는 친구들(나를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이 아닌)의 안부에 대해 전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지에 있는 카페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카페에서 치킨이나 마른안주를 시킬 수 있었고, R이 식단 조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른안주를 시켜 먹었다(치킨을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청포도 에이드도 맛있었고, 간만에 R과의 데이트라 기분이 좋았지만 문제는 그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았다는 것이다. 마침 시간도 늦어져서 우리는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다. 집 근처 골목이 보일 때쯤에는 너무 지쳐버려서 자전거를 탈 생각을 접고 아예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나는 오늘 같은 날 자전거 여행을 나온 것을 후회했지만 다행히 R은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귀가 후에 R은 근 몇 주 간 푹 빠져있었던 게임을 하더니 아프다는 말만 남기고 금세 잠들어버렸다. 너무 신나서 무리한 게 아닌가 싶어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며칠 전부터 그래왔다는 R의 말을 기억해내곤 오늘 일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R가 잠든 후에 나는 편의점에 가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책상 앞에 앉아서 이번 학기 강의 자료를 복습했다. A 수업은 강의 진도를 나간 부분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 다음 파트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진땀을 뺐다. 다음 수업 때는 그 파트에 대해서 교수에게 질문을 해야겠다(그 날 질문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으니까). B 수업은 교수가 ppt를 들고 내용을 읊어주는 그 수업인데 강의 자료의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인 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심지어 주교재로 쓰인 자료는 30년 전의 예시를 들고 있어서 읽고 있으면 시차가 느껴졌다(물론 좋은 교재는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사용되지만...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하위문화의 예시로 팬덤 문화를 들고 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시대에 맞는 예시는 아니다). 그렇게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건너뛰며 텍스트를 읽다가 문득 오늘 오후에 일기를 쓰던 게 생각나서 일기를 완성하려고 노트북을 켜서 일기를 마저 썼다. 하루 일과를 기록하고 나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좀 놀랐다. 기록되지 않는 부분까지 감안하면 정말 많은 일이 벌어진 것이겠지. 그런데도 왜 이렇게 내 일상은 단조롭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변화를 싫어하면서 단조로움에 권태를 느끼는 본인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인간은 본디 모순적인 존재인 것을... 그렇게 구차한 자기변명을 해본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하루를 서둘러 매듭지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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