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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0년 8월 4일

염세 2020. 8. 4. 02:38

 

 

8월 4일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시점에서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 술에 취해 고양된 상태로 며칠을 지내다가도 다시 일상적인 시련에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외로울 때마다 갖은 핑계를 대며 친구를 만났다. 심할 때는 거의 일주일내리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마지막 일기를 업로드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계속 그때처럼 쉼없이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몇 가지의 기본적인 조건만 갖춰진다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은 외면한 채. 기록으로 남길 만 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나는 단 한 문장도 적을 수가 없었다. 타인과 접촉하는 순간 나의 경험은 더 이상 나만의 경험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실로 당연하고도 또 곤란한 일이다. 자전적인 글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 쓸 때 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특정될 만 한 요소(외모, 직업, 나이, 소속, 성격 등) 중 어떠한 것도 드러나지 않게 심혈을 기울이며 그들이 부정적으로 재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최선’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조심해도 내가 글을 쓰는 행위가 충분히 윤리적이지 않다는 비판은 피해갈 수 없었다. 그 중에는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글을 수정하거나 내려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잠시 글쓰기를 중단하며 자숙의 시간을 가졌는데(꼭 그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주 휴식을 가지기 때문에 과연 이 행동이 그렇게 비춰졌을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많은 작가들, 심지어 등단한 사람들까지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소재로 차용한다. 사실 타인의 경험이야말로 가장 좋은 소재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언제까지고 자신의 경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가난과 전쟁을 가장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가난과 전쟁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들이 아닌가? 사회운동가의 입장에서 그들의 ‘만행’은 지탄받아 마땅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글을 쓰는 이상 나는 종종 그런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경험들, 그것이 주는 교훈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생각과 감정이 고갈되면, 다른 이들의 경험을 언급하는 것 외에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세계에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거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이기,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같은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기. 결국 글을 쓰는 행위란 내가 아닌 다른 인물과 사건, 타인의 말과 글로부터 영감을 받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착취와 착취가 아닌 것의 경계선이 모호하다고 해서 경계를 지으려는 시도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경계가 무효하며 지금 당장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소재로 삼는 것도, 그것을 낭만화하는 것도 허용되지만, 타인의 경험을 가공하지 않은 채로 전시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신문 기사나 생애 연구와 달리 소설이 면죄부를 얻는 것은 그것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소설은 오직 허구일 때만, 그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 타인의 경험을 소재로 삼기 위해서 작가는 실제 발생한 사건을 유추할 만 한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못할 때까지 그것을 가공해야 한다(아니면 드물지만 기자나 연구자처럼 당사자에게 허락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것은 작가에게 요구되는 직업 윤리인 것에 앞서 작품활동으로 하는 작가로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여기까지가 소설 작가에게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 작가가 아니라면? 수필이나 에세이 작가의 경우에는 어떨까? 그들이 지켜야 할 ‘재현의 윤리’로는 어떤 것들이 제기될 수 있을까. 기록의 형태로 남은 나의 경험은 실제로 내가 나의 경험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나와 생활반경이 같거나 유사한 사람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과 어떻게 구분되는가? 왜 낯선 사람들보다 나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한 사람들의 경험을 소재로 삼는 데 좀 더 자유로운가 – 그쪽이 훨씬 위험 부담이 큰데도? 물론 윤리적인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소재를 제공한 사람들을 밝히고 그들에게 공을 돌리는 윤리 의식이 투철한 작가들이. 그러나 그들이라고 해서 매번 소재의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을 피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타인의 경험을 소재로 삼을 때마다 그 사람의 허락을 구해야만 했을까? 아니면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 원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어쨌든 부분적으로나마 그토록 엄격한 직업 윤리를 지키는 것은 존경받을 만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은 될 수 없었고,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어떤 사건에 대해 쓸 때마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글을 쓰기도 전에 누구의 허락을 어떻게 받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과연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아마 나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진솔함은 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자 유일한 장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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