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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이인감(異人感)

염세 2021. 1. 15. 00:54

 

 

이인감(異人感)

 

  작년 12월은 그야말로 악재의 연속이었다. 그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떠올리는 것조차 내게 타격을 주었기에 그 어떤 것도 남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다.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쓰고 싶지 않았고, 쓸 이유도 없었다. 가장 최근에 내가 쓴 글이라고는 상담사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작성된 메모뿐이다. 12월 중순쯤에 나는 상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단기적인 문제를 겪고 있던 차라 상담치료를 거듭하면서 증세는 눈에 띄게 좋아졌기만 여전히 치료에 대한 회의감을 버릴 수는 없다. 상담사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방어적인 내담자로부터 유의미한 정보를 얻는 데 능숙했다. 불과 삼 회 차 만에 그는 내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는 과장 섞인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는 핵심에 가까워지고 있고, 그것은 나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내가 그를 신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나의 문제일 것이다. 지금 내가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상담사는 나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던 인턴과는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권위 있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분명 자격증 취득 여부와 교수 경험, 학술 활동 내력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것은 상담 1회 차 때 알아챌 수 있었을 만큼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자꾸만 핵심을 비껴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떤 측면에서는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우리가 내담자와 상담자의 신분으로 만난 타인이라서만은 아니다. 그는 나의 민족 정체성과 그로 인한 사회 부적응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도 개입하지 못했다. 아마 그는 개입하기를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부적절한 개입은 시작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그 또한 알고 있으리라. 문제는 그것이 나를 이루는 전부였다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서 민족 정체성을 빼면 무엇이 남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나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나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상담사는 내가 왜 한국을 싫어하고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을 싫어하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알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나와 같은 사람의 존재를 염두에 두는 사회였다면 나는 적어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상담사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빈곤에서 벗어나고 가족들이 막대한 재산을 손에 넣으면서 나는 이전과 다르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점점 고립되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들과는 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하고는 연결될 수 없다. 그리고 그들과 연결되지 못하는 한 나는 그 누구의 동포도 되지 못한 채 괴물로 남아있는 수밖에 없다. 나는 계급적인 특권을 누리는 것을 대가로 화교도 조선족도 되지 못한 채 영원히 한국인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더 이상 한국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이 곳에서 나를 찾는 사람도, 내가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나는 영원히 이 곳에 적응할 수 없고, 적응할 수 없는 나는 이 곳에서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Y와 나는 종종 한국을 감옥에 비유하곤 했다. 우리는 한국에 갇혔다. 한국은 우리를 가둔다. 한국인들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우리나라로 보내주지는 않았다. 역병이 창궐하는 한 우리는 고향은커녕 한국 외의 그 어떤 곳에도 갈 수 없을 것이다. 곱씹어보면 곱씹어볼수록 암울해지는 소식뿐이다. 나는 가끔 후회하곤 한다. 만약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 내가 용기를 내서 한국을 벗어날 수 있었더라면? 이 곳에서 이룬 미미한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각오를 다졌더라면? 어렸을 때 나는 어떤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정착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환상은커녕 한국 밖에서의 삶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한국만 벗어나고 싶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나를 가장 증오했던, 내가 가장 증오하는 나라에 뼈를 묻을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그 어떤 대안도 떠올릴 수 없었고, 해가 갈수록 선택지는 점점 좁혀져만 갔다.

  나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 그리고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아주 적다. 나는 영어나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는가, 아니면 독일어나 에스파냐어를 배워야 하는가? 이제부터 새로운 언어를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가망이 없었지만, 믿고 따를 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일단 이 공간을 벗어나서 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역병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고 작년에 일어난 모든 일이 꿈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아무것도 꿈꿀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고 싶은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다 끝나지 않을 악몽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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