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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인어(人魚)의 노래

염세 2020. 6. 29. 19:06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생각해. 오늘도 고리타분한 하루의 시작이라고.

세상은 어제와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수 백 수 천 번씩 죽기로 결심하기를 반복하곤 했었지. 마치 내일이 없다는 듯이 살아볼 수 있다면 오늘을 견뎌낼 수 있을 것처럼. 며칠내리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도 내가 사는 세상에 비하면 그것은 그저 달콤한 단잠과도 같다는 걸 알고 있다. 새벽쯤 잠이 들고 오후에 눈을 뜨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부턴가 발밑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난 정말 이 곳에 있고 싶지 않았어. 이 곳에 속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지. 그러나 떠나는 것만은 더더욱 할 수 없었어. 내 마지막 남은 희망은 무참히 짓밟히고 나는 발걸음을 옮기기는커녕 다시 일어설 힘조차 없었지.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직감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내 목숨을 거둬 가주기를 빌고 또 빌었어. 그와 동시에 당장 내 목숨의 시효를 앞당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 그 중에는 나와 목숨줄이 이어진 사람도 있었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의 기분은 곤두박질을 쳤다. 이젠 그리워할 만 한 하나뿐인 마음의 안식처조차 사라져버렸다. 쓰다 만 꼬리표.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가짜일 뿐. 꼭 필요한 부분만을 남겨두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지워버리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들만을 바란다. 그것은 나의 잘못도, 그들의 잘못도 아니다. 나는 매일 다른 세계를 꿈꾼다. 그것의 형상을 찾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며 - 그 퍼즐은 완성을 앞둔 것만 같았다 - 퍼즐이 아니라는 점만 제외하면. 손 틈새로 새어 나간 희망의 약속처럼 사람들은 내 곁을 빠져나갔다.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속을 게워내며 머리를 비웠다. 머리를 비우고 입을 씻어내는 동안에도 나는 손길을 그리워했다. 입이 없는 사람들의 말없는 손길들. 닳기 직전까지 살결을 어루만지며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잠겼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사람들의 민낯을 훔쳐보곤 했었지. 이제는 구르지도 못해 푸흐흐 바람 빠진 냉소만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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