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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02. 프랑스대혁명기의 올랭프 드 구즈
정현
조앤 스콧이 페미니즘 사상사에 기여한 바는 아마 많은 이들이 짐작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가장 자주 언급되는 여성학자 중 한 명으로, 입문자용 여성학 교재부터 깊이가 있는 이론서에서까지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의 저서,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여성 참정권 운동의 주체들을 하나의 역사적 지표로 재현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각 인물의 생애를 영웅 서사로 환원해버리는 시각을 경계하며, 이를 이상화하기보다는 각자의 정치적 · 사상적 배경이 형성된 역사적 맥락에 주목했다. 둘째, 동질성과 차이, 즉 성차에 관한 담론을 통해 페미니즘의 전략(수사)과 그 유용성을 점검했다는 점이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반면, 남성과 여성은 다르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의 이익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처럼 모순적인 주장이 가능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비롯한 보편적인 가치가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저자는 성차 담론과 페미니즘 사이의 경합은 현재까지도 유효하고 그것이 페미니즘이 역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첨언한다.
이 책은 올랭프 드 구즈, 잔 드로앵, 위베르틴 오클레르, 마들렌 펠티에, 루이제 바이스의 생애를 중심으로 프랑스 대혁명 시기부터 프랑스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하기 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우선 올랭프 드 구즈에 대해서 얘기해 보았으면 한다. 드 구즈는 파리의 문학 서클에서 희곡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그 중 몇 작품은 코메리 프랑세즈에서 공연되었다. 그의 희곡 중 <자모르와 미즈라, 혹은 흑인 노예>라는 작품은 흑인 노예제를 비판한 것으로 당국으로 인해 상연이 제한되었다. 드 구즈는 <민중의 편지, 애국심의 국고 프로젝트>라는 팸플릿으로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공중의 구성원을 자처했다. 그는 콩도르세의 추상적 개인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받아, 남녀 양성 사이의 기능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이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성이 쓴 현자의 외침>에서 루이 16세를 옹호하며, 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지만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앤 스콧은 이를 두고 ‘여기서 초점은 시민권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이 같다고 상정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능동적 시민성을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지배적인 경향을 반박하고 정치에서 성차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동시에 여성임이 명백한 여성을 능동적 주체와 연관짓는 것’이라 첨언했다. 후에 그는 입법자를 자칭하며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남성 중심성에 반발하여 <여성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선포했다. 이는 그의 작업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으로, 그가 단두대에 오르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초점이 인물의 미시적인 행보(누구의 딸이었으며 누구와 결혼을 했고 아들이 몇 명이었는지 등의)가 아니었던 만큼 역사적 사실 그 자체보다도 인물이 사용한 전략과 그것의 효과는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하려 한다.
드 구즈의 전략 중 하나는, 서로를 통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기호와 지시 대상 간의 상호 관련성을 유희함으로써 재현의 모호성을 그 한계 지점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이는 페미니즘 특유의 전략이기도 하다(p83).
이는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을 적극 이용한 것이다. 드 구즈는 재해석과 재전유를 적극 이용했다. 이를 통해 그는 여성을 추상적인 시민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재현해낼 수 있었고, 이는 단지 여성이 시민일 수 있음을 넘어서서 시민에게 여성성이 요구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나는 특별한 동물이다.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나는 남성의 용기와 여성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여성도 남성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여성이자 남성(인간)이었다. ‘나는 여성이고 위대한 남성(인간)으로 국가에 봉사한다(p87).’
“출산할 때의 용기에서 드러나듯, 아름다움에서도 여성은 우월하다. 이 성적 우월성은 지고한 존재의 현존과 보호 아래 시민의 권리를 인정하고 선언한다(p121).”
드 구즈는 여성을 시민으로 재현해내기 위해 여성은 남성성을 지닐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여성의 남성성(그것이 1990년대에 퀴어 이론의 발흥을 계기로 등장한 정의와는 다르다고 하더라도)에 주목했고, 그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배타적인 성질이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을 암시했다. 여성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결함으로(그러나 남성이 착취의 주체가 되는 한 아주 무용하지는 않은) 정의되었으나, 그는 여성성을 시민의 자격을 얻기 위한 긍정적인 성질로 재전유했다. 그는 여성의 재생산 능력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남성 역시 여성만큼이나 성적인 존재임을 지적하기 위해 끊임없이 남성의 어머니를 소환했다. 잔 드로앵 역시 여성을 재평가하기 위해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언급한 바 있으나, 잔 드로앵이 모성에 초점을 둔 반면 드 구즈는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생산하고, 그를 사회화하는 주체로서 여성의 기능을 좀 더 강조하였다.
저술은 저자의 상상력을 요구하고, 저자의 상상력에 의존했다. 이런 식으로 드 구즈는 자신의 능력을 상상력 덕분으로 돌렸다(p109).
드 구즈는 상상력에 힘입어 자기-재현의 능력(그리고 정치적인 재현에 대한 자신의 권리)을 인식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상상력에 호소하는 것은 위반, 더 나쁘게 말해 미친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p96).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상상력은 위험한 능력이었다. 때문에 상상력은 이성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부차적인 능력으로 여겨졌으며,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된다한들 이성의 통제 하에서 발현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볼테르는 상상력을 능동적인 상상력과 수동적인 상상력으로 구분하였다. 그는 능동적인 상상력을 유용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수동적인 상상력을 무용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자연스럽게 능동적인 상상력은 지식과 담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성의 것으로, 수동적인 상상력을 여성이나 노동자 계급의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대항하여 드 구즈는 자신이 능동적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능동적인 상상력이 지닌 잠재성을 높이 평가했다 - 그는 상상력을 저술을 비롯한 일련의 창조적 행위의 전제로 사유했다.
드 구즈는 공화정의 배타적인 행위를 비판하고 수정하는 역할을 군주제가 담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점에서, 군주제를 옹호했다. … 이 때문에 그녀의 글들은 아버지의 법으로서의 법을 재생산하는 동시에 훼손시키는 모순적인 효과를 낳았다(p127).
공화정을 가족 제도에 비유한다면, 아버지는 lawgiver고, 아들은 lawmaker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대신하려 하지만, 아버지만큼 절대적인 권위를 갖지 못했고 아버지만큼 자애롭고 자비롭지도 않다. 드 구즈가 시스템으로서 군주제가 지닌 효율성 때문에 군주제를 옹호했는지, 아니면 여성과 참정권을 공유하려 하지 않는 ‘극단적인’ 공화주의자에 맞서기 위해 전략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앤 스콧은 lawgiver를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로 상정한 것을 한계로 지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실제로 탈-신화화 이전의 가부장제 사회는 부계 사회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사회에서 아들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배제에 대항하기 위해 아버지의 권위를 다시 소환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또한 아들에게 맞서기 위해 아버지의 권위를 소환하는 것은 아들이 아닌 딸이 정통 후계자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드 구즈의 군주제에 대한 옹호는 아버지의 법을 재생산하는 동시에 훼손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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