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언젠가부터 글쓰기가 부담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애초에 왜 글을 쓰고 싶어했던 걸까.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해명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내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보기 좋게 포장된 문장들을 늘여놓으며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왜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가장 오래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 강박적으로 내게 유의미했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글을 썼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이자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치열한 생존 투쟁이 글쓰기였다. 사지가 찢기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내가 존재했노라고 선언하는 것은 어쩌면 사지에 ..
2월 1일 오늘은 수 년 간 알고 지내던 사람과 연을 끊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서로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정보들과 140자 내외의 문장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아주 쉬웠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좋아하고 동경했던 사람이지만, 내가 몇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의 입지를 다져갈 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이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일정한 거리를 지켰기 때문에 그를 끊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그가 나는 그처럼 되기에 실패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를 대변하게 되기까지 그가 거쳐갔을 법한 모든 과정을 거치고도 그와 같은 사람은 되지 못했다. 나는 그처럼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완전무결하고 많은 이들로부..
1월 2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죽은 듯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몇 년 전의 내가 저지른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실언을 떠올리고는 괴로워했다. 과거에 활동했던 단체들, 과거에 참석했던 모임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 그들에게 하지 않았어야 할 말들과 행동들. 나는 단 한 번도 그 모든 말을 기억해낸 적이 없다. 말들은 항상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얼핏 비추는 찰나의 진심, 일그러졌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그들의 얼굴만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괴로운 기억은 외면하려고 할수록 생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언젠가부터는 그것을 외면하는 것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는 것은 내게 ..
12월 3일 배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나는 쉴 새없이 꼼지락거렸다. 외투 주머니에 있던 메모장을 꺼내 들었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줍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가 휴대폰이나 피젯큐브 같은 것들의 행방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대형 강의실의 맨 뒷줄에 앉아 초조한 마음으로 타자를 친다. 이따금씩 코를 훌쩍이며 장을 쥐어짜는 듯한 복통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에서는 Mitski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의 히트곡이 아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앨범 수록곡의 가사가 입가에 맴돌다가 사라진다. 어제는 일기를 쓰다가 눈물이 쏟아지는 걸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데는 새벽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었다. 내가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던 시점에 R은..
12월 2일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H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C가 모 여성 단체에서 인턴을 하고, J가 노동 단체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는 동안 나는 밥을 하고 빨래를 널고 남은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올해 들어서 나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번 학기에도 그랬듯이 나는 어중간한 학점을 받아왔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졸업하기는 글렀다. 책을 좀 읽어보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도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펼쳐 보기도 전에 연체되었다. 그런 나날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기에 쓸 수가 없었다. 요즘은 체크리스..
11월 16일 처음부터 일기를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기라도 쓰지 않으면 도무지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미뤄뒀던 사랑니 발치를 했다. 발치 직후에 세 시간 동안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그게 무색하게도 발치 부위를 압박하던 거즈를 떼는 순간 거짓말처럼 고통이 싹 가셨다. 마치 그 고통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며칠 동안은 이 고통을 감수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줄 알고 장을 보러 가서도 정작 사온 식재료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계획이 물 건너갔다. 고통이 가시자마자 발치 전에 샀던 다 식어버린 토스트를 다급하게 입 안에 쑤셔넣었다. 10시간 넘게 물도 음식도 못 먹은 상태라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
11월 12일 며칠째 쓰던 일기를 날려버렸다. 당연하게도 그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고, 완전히 내 예상 밖에 있는 일이었다. 개의치 않기로 했지만 문득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R이 상담소 소장님을 비롯한 상담사 분들의 호의로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게 된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마침내 지난 주에 R은 자신을 가장 괴롭게 하는 문제를 언어화 하는 데 성공했다. 상담소 소장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아 보였던 그 상담사는 R의 얘기를 듣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한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상담사에게 전달하지는 못했겠지만 필요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R은 드디어 정신적 외상..
10월 25일 마지막으로 일기를 올린 시점이 2주 전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일주일이 한 달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나 자신은 물론 R 역시도 아직까지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말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는 이러저러한 일에 말을 얹는 것 외의 일에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기분 좋은 생각을 하려고 했다. 내가 하려고 했던 것들. 내가 즐겨하던 일들에 대해서.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미 뇌 전체가 무력감과 분노에 잠식당한 것 같이 느껴졌다. 오직 S가 떠나간 후에 피폐해진 정신으로 폐허가 된 집을 치우던 일과 집에만 오면 아..
10월 11일 번역 과제에 대한 발표를 듣는다. 발표자의 목소리부터 내용, 이를 전달하는 방식 그 모든 게 그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개운한 편인데도 계속 눈이 감겨온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열의를 가지고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과 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매일 아침 그들을 일어나게 하고 학교를 가게끔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떨군다. 나는 아무리 그러고 싶어한들 내가 결코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없다. 따분한 일을 차분하게 해나가는 데 의미를 찾는 저 성실한 사람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그 성실함을 거부하고 무언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될 수 없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꾸..
9월 22일 오늘은 서점에 갔다. 처음부터 서점에 가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일어나보니 오후 1시가 되어있었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는 데 2시간이 지나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다. R은 12시에 과외가 있었는데 다행히 오후 6시로 미뤄졌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지만 R은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R도 영화광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나와는 취향이 도무지 겹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R은 영화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반면 나는 여성 영화나 아예 여혐 쿠소 영화가 아니고서는 흥미가 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R은 편의점에서 뭘 사먹었고 나는 토스트를 샀다.) 가장 가까운 서점을 검색했다. Y여대에 있는 지점이 제일 가까워서 그쪽으로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