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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물

문화사회학 과제

염세 2020. 10. 24. 20:58

 

1. 사회적 계층의 차이에 따라 문화 자본이 작동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대체로 누군가가 소유한 문화 자본은 그가 속해있는 계층의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자본의 소유 정도가 문화적 자본의 소유 정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으로 하위 계층에 가깝지만 막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도 있고, 문화 자본의 측면에서는 상위 계층에 가깝지만 그에 걸맞는 경제적인 자본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의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반례가 발생하는 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회 계층 이동인데, 계층 하향 이동을 경험한 사람이 소유한 문화 자본은 더 이상 그의 계층을 나타내는 지표라 보기 어려울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으로 문화 자본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문화 자본의 특성과 그것을 획득 가능한 경로가 무엇인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자본에 비해 문화 자본은 비가시적이고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교환과 증여가 가능한 경제적 자본과 달리 문화 자본은 교환과 증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세습, 노동, 투기 등을 통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획득할 수 있는 경제적 자본과 달리, 문화 자본은 교육과 사회화 등의 과정을 통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생성된다. 그리고 소모재라는 측면에서 유한한 경제적 자본과 달리 문화 자본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특성이 있다. 문화 자본은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해 착안된 개념으로, 추상적인 가치와 신념으로만 형성화되었던 개개인의 문화적 소양을 계층과 영향을 주고받는 자본으로 사유하려 한 것이다. 부르디외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적 자본의 획득이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문화적 자본은 무의식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는 개인이 제도와 문화를 수용할 뿐만 아니라 내면화하고 체화한다고 하며 이를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나타내려 했다. 상위 계층에 속한 이들은 상위 계층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하며, 이는 취향을 비롯한 사적인 영역이라 치부되는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상위 계층의 취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적, 금전적, 인지적 자원이 요구되기에 그들의 취향조차도 아무나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계층에 비해 상위 계층이 향유하는 예술 작품은 추상적이고, 복잡하며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즉 상위 계층의 문화 자본에 대한 접근성은 매우 떨어지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위 계층은 다른 계층과 자신의 계층을 구분 지을 수 있다. 반면 하위 계층이 향유하는 예술 작품은 매우 접근 가능하며 추상적이고 더 높은 가치를 나타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들은 다른 계층에 비해 문화 자본의 수혜를 거의 얻지 못하는데,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좀 더 하위 문화에 가까운, 저급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상위 계층의 취향은 그들의 계층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듯 하위 계층의 취향은 하위 계층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한다. 당연하게도 중간 계층과 하위 계층에 속한 이들은 상위 계층의 문화(그들의 복식, 태도, 어조, 몸짓, 그들이 향유하는 예술 작품 등)를 선망하고 이를 모방하고 싶어한다. 때문에 중간 계층에 속한 이들은 상위 계층을 모방하려 하고, 하위 계층에 속한 이들은 중간 계층을 모방하려 한다. 그리고 상위 계층에 대한 모방이 점점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때쯤 상위 계층은 새로운 형식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중간 계층 및 하위 계층은 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모방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계층 간의 경계를 흐리고, 상위 계층은 다른 계층과 구분지으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에 변칙을 줌으로써 그 경계를 공고히 한다. 이처럼 상위 계층은 문화 자본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문화 자본이 될 수 있는지를 규정할 권한이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2. 문화자본 이론이 한국 문화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한국 문화와 프랑스 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부르디외의 이론은 특정 사회의 특정 시대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한국 사회를 비롯한 다른 사회의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분명 계층 간의 구분이 좀 더 명확하고, 문화 자본의 역할이 보다 강조되는 것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상위 계층에 속한 이들이 무엇이 고급 문화, 즉 문화 자본이 될 만 한지를 결정하고, 중간 계층이나 하위 계층의 구성원들이 이를 모방하는 것은 다른 사회에서도 종종 관찰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다만 부르디외의 이론을 당대의 프랑스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의 사회 현상에 적용하려 할 때, 우리는 부르디외의 이론의 적용 가능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문화 자본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고 대중 문화가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는 미국 사회나 한국 사회에서는 계층 간의 문화적 구분이 좀 더 불명확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혹은 좀 더 정확하고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 부르디외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이론으로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의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하위 문화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고급 문화자본을 소유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행위자의 수행성'에 주목해서 분석해보기

 

문화자본을 거의 소유하지 못한,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과 문화자본의 수혜를 받은 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 간의 교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실제로도 계층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하위 계층의 사람들이 상위 계층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아마 이 질문의 의도는 문화 자본의 보유 정도가 다른 사람들 간의 '사적인' 혹은 '인간적인' 교류가 가능한지일 것이다. 물론 가능은 하다. 아마 현존하는 많은 사례를 통해서 이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과 다른 직종에 종사한다. 그들은 설령 같은 건물에 있을지라도 다른 공간, 다른 환경에서 노동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거주한다.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이 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과 접촉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는 오직 상위 계층의 사람이 이러한 예외를 허락했을 때뿐이다.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서 주체적으로 계층을 초월하여 타인과 관계맺을 수 있다는 관점은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한 관계가 성립되고 심지어 장기간에 걸쳐서 잘 유지된다한들 그들의 계층과 그에 따른 문화 자본이 그들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초계급적' 연대에 관한 사례마저도 계층 간의 차이가 그들이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예측할 만 한 근거가 아닐까? 버틀러가 수행성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젠더를 고정된 범주가 아닌 동사의 형태로 사유할 가능성이 열렸지만, 그것이 젠더가 권력관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그리고 이 개념을 제시한 버틀러 또한 이러한 관점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과연 인간은 사회적 혹은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설령 부분적으로라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한들 사회학자로서 그것이 사회와 문화의 영향이 약화된 증거로 보는 것은 적절한가?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을 이 사례에 적용시키기에 앞서 생각해볼 만 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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